서울 한복판 모래섬에서 금융·정치 중심지로: 여의도 개발 이야기
지금은 정치와 금융의 중심지로 불리는 여의도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황량한 모래섬과 갈대숲이 우거진 침수지대였습니다. 이런 척박했던 땅이 초고층 아파트와 국제 금융센터, 서울의 멘해튼으로 재탄생한 그 중심에 있었던 김현옥 서울시장!!! 그의 과감한 도시개발 계획을 통해 변화한 여의도의 변천사를 살펴봅니다.
1. 한강 위 모래섬, 여의도의 옛 모습
과거 여의도는 '여의나루'로 불리며 한강의 외로운 섬이었습니다. 나루터로 잠시 사람들이 오갔지만, 대부분은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과 갈대숲만 무성한 황무지였죠. 일제강점기에는 비행장이 들어설 정도로 전략적 위치였으나, 홍수와 침수 위험이 커 본격적인 개발은 꿈꾸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도시 확장의 필요성이 절실해지자 이 외딴 섬 여의도에 사람들의 눈길이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2. 김현옥 시장, '불도저'로 여의도를 개척하다
1966년, 김현옥은 서울시장으로 취임하며 여의도를 현대적인 신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으로본격적인 ‘한강개발사업’을 추진하였다. 한강 바닥에서 흙과 모래를 퍼올려 전체의 높이를 높이는 대규모 매립 공사가 시작되었고 그의 거침없는 추진력에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여의도는 단기간에 완벽히 탈바꿈합니다.
여의도 매립공사의 핵심 성과(1968~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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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반 높이 상승 및 홍수 방지용 제방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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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전기, 상하수도 등 도시 인프라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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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인 방수시설로 홍수 걱정 없는 도시 설계
이 거대한 토목공사는 한국 최초의 현대적인 도시계획 프로젝트로, 이후 한국 도시 개발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3. 정치의 중심지로 부상하다: 국회의사당 이전
1975년, 국회의사당이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여의도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69년 건설 결정 이후 단계적으로 이전). 국회의사당을 시작으로 KBS(한국방송공사)와 같은 주요 기관들이 속속 여의도에 둥지를 틀면서, 한적했던 모래섬은 국가 운영의 핵심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4. 금융의 중심지로 도약하다: 증권가의 등장
1979년, 한국증권거래소가 중구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전하면서 이곳은 금융 중심지로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980~90년대 증권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여의도의 거리에는 ‘증권맨’들이 넘쳐났고, 자연스레 독특한 금융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특히, 1985년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이었던 63빌딩이 세워지면서 여의도는 한국 금융의 랜드마크로 급부상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IFC몰 같은 초현대적 금융센터가 들어서면서 여의도는 한국의 ‘월스트리트’로 확고한 입지를 굳혔습니다.
5. 여의도의 오늘
현재 여의도는 정치와 금융뿐만 아니라,시민들의 휴식처인 여의도 공원과 한강 공원, 방송국과 쇼핑몰이 어우러진 복합문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김현옥 시장의 ‘불도저식 개발’ 방식은 환경 문제와 주민들과의 소통 부족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의 결단력은 한국 도시화의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여의도의 개발은 이후 강남 개발과 신도시 조성 등 대한민국 도시계획의 선구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여의도를 통해 서울은 본격적인 현대 도시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6. 여의도, 발전의 역사
한강의 외로운 모래섬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와 금융의 중추로 성장한 여의도의 배경에는 김현옥 시장의 대담한 비전과 불굴의 추진력, 국회의사당과 63빌딩 같은 상징적인 건축물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끊임없는 도전이 어우러져 여의도를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습니다.